데어 윌 비 블러드

Posted 2008/04/22 19:30, Filed under: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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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뷰는 지독한 사업가다. 하지만, 이 '지독한'이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극사실적인'으로 바뀌어도 별반 무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 석유 시추업자 노릇을 하며 벌이는 부동산 매집, 과다한 노동 시간 등의 양상은 구태의연하지마는 충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100년 전 미국에서 으레껏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듯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거스르지 못하는'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렇듯 '그럴 수 밖에 없는 고통스러움'이 사회와 관계와 혹은 종교와 어떻게 결합하느냐, 다.

플레인뷰는 그의 이복동생(이라 주장했던) 헨리나 그의 아들 H.W를 이용한다. 치열히 사업을 진행시키는 가운데 생기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피로감을 아들이나 이복동생을 곁에 두고 안정시키는가 하면 그들을 데리고 다니며 그의 사업을 가족적인 것으로 내비추어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신뢰감을 주려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우수한 점은 다만 그런 행동 양식을 오직, 플레인뷰가 악인이어서 그러하다, 는 권선징악적인 모티프에서만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용하고 수단적 관계로만 대하는 사업가 플레인뷰에게 실은 그들에 대한 진정성이 내밀히 자리잡고 있다. 사업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다른 것에 대한 포기로 그는 대체로 진정성이나 목적적 관계, 등을 택하지만 이 과정에서의 갈등은 엄존하는 것이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이복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모습이나 그의 아들을 버리고 난 뒤(사실은 그가 은광을 캐던 시절 죽은 동료의 아들이다) 자책하며 다시 데리고 오는 등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궁극적으로는 그 둘 모두를 '버리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의 고통스러움은, 결과적으로는 명백히 냉혈한인 그가 과정적으로는 결코 그렇지만도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H.W나 헨리와의 관계는 영화 말미의 폭발한 알라이 선데이나 완강히 부동산을 넘기지 않는 밴디와 갈등의 존재에 맥락을 공유하는 면이 있는데, 그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비중 있는 주제인 '종교'에 관해서다. 끈질기게 자신의 교회로의 헌금, 혹은 지역 사회에서의 유지로 자리잡은 플레인뷰에게 자신이 돋보이게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사 알라이 선데이는 벤디의 땅을 빌리게 해주는 대신 그에게 세례를 주고 보혈을 받게 한다. 스스로가 예언자(선지자, prophet)이라 주장하는 선데이의 말대로라면 악독했던 그의 행동들, 특히나 세례식 내내 누차 강조된 아들을 버린 그의 행동은 신의 권능을 빌어 용서를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억지로 했던 (광란의)세례식이 끝난 후 그는 오직, '이제야 송유관을 뚫을 수 있겠어'라는 말만을 하며 반복된 알라이의 아들 이야기로 인했던 양심적 고통을 체내화해버리고 외부에서 그 답을 구하려 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교리인 '보혈'마저도 거짓 선지자인 목사 알라이를 통해 짓뭉게고 세례는 강제로 물을 퍼붓는 행위 정도로 희화화한다. 신념에서 비롯되었든, 다른 이들을 불신하는 성격에서 비롯되었든 플레인뷰는 양심적 판단의 부분을 종교로 떠넘기지 않는 것이다. 대신 그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고통스러운 악행을 계속한다. 알라이도 플레인뷰도, 악행을 하지만 기독교인은 그 악행을 '반복적으로' 용서받을 뿐이라는 점만 다를 뿐 실천적 면에서는 사실, 동일하다. 애초 세례나 보혈의 의미 자체가 세례 요한과 예수에게서 속죄의 상징으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명확히 기독교에 대한 부정 그 자체다. 이는 매우 특징적인데 플레인뷰에 대하여는 긍정이나 부정 일변도의 시각을 유지하지 않는 영화가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만은 충실히 일관된 비판을 가하고 있어서다.

영화는 비단 내적 비판이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종교로도 비판을 넓힌다. 기독교의 이런 존재는 플레인뷰의 석유 시추로 촉발된 자본의 성장 곁에서 종교(특히 개신교) 역할에서 특히 묘사된다. 자본의 발전에 방해되는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대신 교회는 자본의 잉여를 조금씩 나눠가지는 것이다. 그 출발은 석유 시추를 시작할 무렵 알라이가 그 채굴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는 것부터다. 종국에는 플레인뷰가 알라이를 스스로 거짓 선지자이며 하나님은 없다, 는 고백을 하게 만들고 살해해버리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공적'이며 '세속적'이다. 그리고 종교는 '성스러우며' 개인적 믿음이기에 '사적'이다. 자본의 추구의 과정이 교회와 이해가 일치할 때 둘은 밀착하지만 그 이해가 상호 괴리된 순간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은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다. 종교는 생존을 위해 '성스러움'과 '사적'의 두 특성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종교는 대체로 '성스러움'을 포기하고 '사적인 믿음'을 이용한 '세속적'인 자본의 추구 정도의 지점에서 합의를 이끄는 편이다. 영화는 그 가장 기저부의 원인을 정확히 꿰뚫고 있고 그것의 가장 선연한 양상을 보여준다. 플레인뷰와 알라이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갈등은 신을 부정하는, 성스러움을 부정하는 알라이의 모습으로 그 종말을 맞는다.

혹자는 이라크 전의 알레고리로 이 영화를 파악한다. 이라크 전은 부시의 오판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자본의 이해가 합치하여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의문은 이것이다. 과연, 기독교 근본주의에 힘입은 비인도적인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 부시와 네오콘의 집권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하는지, 기독교와 자본의 내재적으로 필연적인 특성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아주 확고히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결국, 종교는 국가나 전사회적 차원, 자본의 차원에서 어떠한 윤리적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다. 그만큼의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영역은 종교를 철저히 윤리적일 수는 없게 만들고 그 영향력을 포기하는 순간에는 더 높은 차원에서의 윤리적 해결책이 무용해진다. 사실, 미국에서 불거진 기독교 측의 창조론 관련 소송 패소나 가장 큰 규묘의 교회를 소유한, 영향력 있는 개신교 목사가 '저속한'(세속적인) 이유로 구속된 사례 등의 파문은 그들 몇몇의 인격적 결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내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2008/04/22 19:30 2008/04/2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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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데어 윌 비 블러드 - 자본주의의 폭력성, 그리고 위선과 탐욕의 역사

    Tracked from 페니웨이™의 In This Film 2008/04/22 22:18 Delete

    인간이 가진 탐욕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남이야 어찌되건 내 집값만 오르면 만사 오케이라는 요즘 한국인의 자화상을 보면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해야 할 성직자들이 겉으로는 온갖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신자들을 속여가며 뒤로는 고급 승용차에 몇채씩..

  1. # bitch pic sexy 2008/05/23 04:25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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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bdsm training san f 2008/05/24 03:56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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